지난 11월 30일 토요일. 홍성에서 출발한 희망버스가 밀양에 도착해서 처음 발을 디딘 곳은 바로 아래 영상에 나오는 상동면 도곡마을저수지이다. 영상에 나오는 것처럼 저 길을 따라 할매할배들과 함께 산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우리만 아니라 경찰 지원병력도 함께 산에 올랐다. 우리보다 앞서가려고 뛰어가는 손주뻘되는 경찰들에게 할매들이 말씀하신다. "따로 올라가지 말고 같이 올라가자. 죄없는 느그들이 욕본다." 

우리는 결국 110번 송전탑 공사현장을 보고 내려왔다. 내려오고 나서야 할매할배들이 실은 공사현장까지 제대로 올라가 보신 것이 처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산에 올라가는 시도를 안하셨던게 아니었다. 경찰들이 워낙 산밑에서부터 막아댔기 때문에 정작 현장까지는 제대로 못 올라가보셨던 것이었다. 그러니 할매들도 어쩔 수 없이 입구를 지키고 앉아, 산에서 내려오는 경찰차라도 막아서시는 수밖에.

할매할배들이 그동안 정말 올라가 보고 싶었던, 그러나 올라가 볼 수 없었던 송전탑 공사현장. 밀양희망버스를 타고 내려와 <우리 모두가 밀양이다>를 외치는 사람들과 함께 기어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처음 올라가 본 송전탑 공사현장. 그러나 마음 한켠에선 정말로 보고 싶지 않으셨을, 나무를 베어낸 자리에 콘크리트를 붓기 시작한 110번 76.5KV 송전탑 공사현장이 바로 거기 있었다.

토요일 저녁, 밀양희망버스 문화제. <도곡마을에서> 전하는 12번째 밀양영상소식을 보았다. 할매들의 노래도 들었다. '내고향 밀양땅~ 흙에 살리라~ ... 내 나이가 어때서~ 내 나이가 어때서~ 데모하기 딱 좋은 나인데~' 웃으며 노래하시는 할매들의 모습은 더없이 보기 좋았다. 한편으로 속상하고 슬픈 마음도 들었지만, 그래도 좋았다. 고맙고 또 죄송했다. 하자아이들의 페스테자 공연도, 꽃다지의 공연도 좋았다.

우리 아들딸이 자라서, 페스테자공연단처럼 신나게 놀 수 있으면 좋겠다, 꽃다지처럼 당당하게 노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 보고 있자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밀양할매할배들처럼 이웃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죽을 힘을 다해 고향을 지켜내는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참말로 제일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그렇게 지켜내고 싶은 고향을 물려주어야 할 책임이 다름아닌 나에게 있다는 것도 되새겼다. 사람이 온 삶을 걸고 지켜내고 싶은 것이 돈이나 명예 따위가 아니라, '내 이웃과 고향땅'이라면 정말 괜찮은 인생 아니겠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문화제를 마치고 상동면 고답마을 회관으로 돌아와 뒷풀이를 하였다. 마을어르신들이 풍성하게 차려주신 고깃상. 따뜻한 회관에서 맛있게 먹고 배를 채우면서도 한편으론 송구스러웠다. 이렇게까지 대접받을기 아인데... 게다가 핵발전 그만하자고, 송전탑공사 중단하자고 신나게 외쳐놓고는, 마을회관에 들어오자마자 바닥난 아이폰 배터리를 충전하려고 빈 콘센트부터 찾아 다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이래저래 마음이 많이 불편했다.

12월 1일 일요일 아침. 어제 내렸던 도곡마을 저수지에 다시 모여 아침을 나눴다. 장작불이 두 개가 올라가고, 밥을 나누고, 노래를 나누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흔을 넘기신 할매가 이야기하셨다. 조상대대로 맹글어온 논밭을 지키고 싶은데 힘이 없다고. 걸음을 몬걸어 산에도 몬올라간다고. 방에 앉아있다 헬리콥터소리가 들리면 가슴이 쿵쾅쿵쾅한다고. 근데 이렇게 와줘서 밤에 잠이 다 안오도록 고맙다고...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할매할배들의 일상과 진심이 그대로 묻어나는 시위모습은 정말이지 감동적이다. 울어야 할 때 울고, 웃어야 할 때 웃고. 욕해야 할 때 욕하고, 실갱이해야 할 때 실갱이하고. 챙겨줘야 할 때 챙겨주고, 다독여야 할 때 다독여주고... "오늘 하루 잘 싸우고 내일 하루 잘 준비하자. 어르신들은 그렇게 싸우면서 8년이 흘렀습니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원회 김준한 신부의 말이다. 오늘 아침에도 그 모습 그대로 울고, 웃고, 이야기하고, 노래하면서 당신들이 8년간 아니 평생을 쌓아오신 내공을 우리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셨다. 

보라마을에서 정리집회를 마치고 헤어지는 시간. 버스를 타러 가는 길에 마주치는 밀양어르신들 한 분 한 분에게 고개숙여 인사를 드렸다.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손을 맞잡는데 눈물이 새어나왔다. 고맙다고 안아주시는데 눈물이 터져나왔다. 미안한 마음, 고마운 마음, 속상한 마음이 한데 뒤엉켜서 눈물이 그치지가 않았다. 휴....

돌아오는 길. 옥천휴게소를 지나자 고속도로 광고탑 위에서 흩날리는 깃발들이 보인다. 유성기업 노동자들이란다. 그제,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 한 분이 또 스스로 목숨을 끊으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일터로, 가족에게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노동자가 이 세상에 어디있을까? 그런데 이 추운 겨울에 왜 사람들이 길을 막고 서있어야만 하나? 탑위에 올라가 있어야만 하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야만 하나? '아무 욕심도 없이 지금 이대로만 살 수 있기를' 바라는 그 마음을 세상은 왜 몰라주나?


#우리모두가밀양이다
20131130 #밀양희망버스
#밀양765kV송전탑OUT
#송전말고밭전
#공사말고농사

밀양 땅에, 할매할배들의 삶에 평화가 깃들기를...
Peace be within Miryang!




2013.11.30. 밀양희망버스 문화제에서 상영한 <밀양영상소식12; 도곡마을에서>
http://tvpot.daum.net/v/v690bRD6Fp66DgglpGXuD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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