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늙은 농부의 경고 "스티브 잡스, 네가 꿈꾼 세상은…" [변방의 사색] 웬델 베리의 <온 삶을 먹다> 서평 _이계삼 밀성고등학교 교사. 프레시안 20111028, 기사보기▶

웬델 베리가 상정하는 가장 이상적인 모델이 있다면 미국에 여전히 번성하고 있는 아미쉬 공동체이다. ... 그들이 지키고 있는 원칙을 함께 읽어보자.

1.가족과 공동체를 지킨다.
2. 이웃과 함께 농사짓는다.
3. 요리와 농사, 가사와 주택에 관한 기술을 이어간다.
4. 기술 이용을 제한하여, 이용 가능한 인력이나 태양광, 풍력, 수력 같은 무료 에너지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5. 농장을 작은 규모로 제한하여, 이웃과 의좋게 농사를 짓고 저출력 기술을 최적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한다.
6. 앞서 말한 방식들로, 비용이 일정 수준을 넘지 않도록 한다.
7. 자녀가 가족을 떠나지 않고 공동체를 지키며 살도록 교육한다.
8. 농사짓기를 실용적 기술이자 영적 수단으로 존중한다.

그는 말한다. 이런 사회로 전환해야 한다고. 그랬을 때 우리는 경영자, 주주 전문가, 정치가들에게 착취당하는 사회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 웬델베리가 추천하고, 아미쉬가 오랫동안 다듬고 지켜온 여덟가지 원칙들. 여기에 아무것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그대로 나와 우리 가족의 삶의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싶다. 참으로 소박하고 진정어린, 보물과 같은 원칙들을 한 곳에서 발견한 것이 참으로 기쁘다. 고맙기 그지없다. 아직 아내와 아이들과 구체적으로 논의해보지 않았지만 분명 나와 같은 생각이리라.

만일 제가 결정할 수 있다면, 저는 한미FTA를 우리 아이들에게 물려주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어머니들의 정직한 육체에 대한 배반입니다. 우리 어머니들은 누구들처럼 남의 땅과 목숨을 빼앗아 자기 땅이라며 울타리를 치고 총을 들고 지키는, 그런 식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자기 ‘소유 재산’과 자신의 ‘자유’가 세상의 그 모든 것보다 더 귀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각자의 욕망을 절대화함으로써, 더 행복하고 더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의 육체도 언젠가 어머니들의 육체가 갔던 길을 뒤따라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못 들여놓은 제도와 법은 무덤으로 가는 길에 우리와 동행하지 않습니다. 한미FTA 협정문 24개 장, 1,171페이지는 실은 우리 아이들의 것입니다.
_저자후기 중에서, 《한미FTA 핸드북》, 송기호, 녹색평론사

+ 녹색평론사는 가난한 출판사다. 정말이지 귀한 책들을, 하지만 잘 팔리지 않을게 뻔한 책들을 고집스럽게 펴내온 출판사다. 그런 녹색평론사에서 최근에 아예 두 권의 책《한미FTA 핸드북》과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전문을 인터넷에 무료로 공개하셨다. 오죽 절박한 심정이었으면 그러셨을까... 그저 고맙고 또 고마울 따름이다.

+ 나이가 들어서일까? 요즘들어 앞선 세대 어머니들이 걸어오신 길-삶의 모습 또는 삶의 자세에 조용히 고개가 끄덕여지는 일이 잦아졌다. 전에는 합리적이지 못하고 어리석게만 보였는데, 이제는 오히려 그 길이 더 인간적으로 옳은 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그 길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자기 '소유 재산'과 자신의 '자유'를 자의반이든, 타의반이든 오랫동안 묵묵히 내려놓고, 다음 세대를 위해 희생하며 걸어오신 길. 그 길의 세세한 모습과 이유가, 슬픔과 아픔 그리고 기쁨과 보람이 궁금하다. 그 길이 지금의 나와 어떻게 이어져왔고, 또 다음세대 아이들에게 어떻게 이어져야, 보다 의미있고 인간적인 삶을 함께 누릴 수 있는 것인지가 나는 참으로 궁금하다.
녹색평론사에서는 일반 시민과 공무원 여러분들이 한미FTA(자유무역협정)의 핵심 쟁점인 투자자 국제중재권(ISD)의 문제점에 대하여 쉽게 알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 본사에서 발간한 《한미FTA 핸드북》과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전문을 인터넷에 무료 공개합니다. 많은 이용 바랍니다.

*  한미FTA 핸드북 ― 공무원을 위한, 투자자 국제중재권 해설 | 송기호 (2011년 개정 온라인판)

한미FTA 협정문 내용이 국제법 및 국내법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며, 공무원의 행정업무 전반이 어떻게 해서 국제중재의 회부 대상이 되며, 공무원에게 어떤 의무가 새로이 부과되는지, 그리고 이 새로운 질서가 수용할 가치가 과연 있는 것인지를 꼼꼼히 검토하였다.

*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 | 홍기빈
한미FTA의 가장 큰 쟁점 중 하나인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역사적·이론적 고찰과 이것이 실제 동원되었던 사례들의 분석을 통하여 저자는 이 제도의 본질이 경제적 차원에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 외국 투자자들에 의하여 투자대상국, 즉 한 나라의 국민들의 삶이 근간부터 광범위하게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소상하고 생생하게 밝혀준다.

 


Peaceable Kingdom_Edward Hicks

Peaceable Kingdom, oil on canvas, 75 x 89.5 cm _Edward Hicks (1780-1849)


6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7 암소와 곰이 함께 먹으며 그것들의 새끼가 함께 엎드리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8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9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 _이사야 11장 6~9절 (개역개정)

6 The wolf will live with the lamb, the leopard will lie down with the goat, the calf and the lion and the yearling together; and a little child will lead them. 7 The cow will feed with the bear, their young will lie down together, and the lion will eat straw like the ox. 8 The infant will play near the hole of the cobra, and the young child put his hand into the viper's nest. 9 They will neither harm nor destroy on all my holy mountain, for the earth will be full of the knowledge of the LORD as the waters cover the sea. _Isaiah 11:6~9 (NIV)


* 관련자료
 - Media in category "Edward Hicks": http://commons.wikimedia.org/wiki/Category:Edward_Hicks


+ <기독교 사회주의 산책>을 읽는 중에 알게된 화가의 그림. 화가와 그림이 모두 매우 인상적이다. 아울러 '기독교 사회주의'에 대해 좀 더 깊이 살펴보고, 공부해보고 싶다.
  질산칼륨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이 파업을 시작했다. 수천 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이 여러 나라의 국기를 앞세우고 노래를 부르며 칠레 북부의 자갈투성이 사막을 가로질러 이키케 항으로 향한다. 노동자들이 이키케 항을 점거하자 칠레 내무장관은 사살 명령을 내린다. 그들은 맨몸으로 버티기로 결정한다. 그들은 돌멩이 하나 던지지 않을 것이다.
  파업 노동자들의 지도자인 호세 브릭스는 미국 영사관의 보호를 거절한다. 페루 영사는 자국 노동자들을 구하려고 애쓰지만, 페루 노동자들은 칠레인 동료들을 버리고 떠나려 하지 않는다. 볼리비아의 영사도 자국 노동자들을 빼내려고 애쓰지만 소용이 없다.
 -우리는 칠레 동료와 함께 살고 함께 죽겠다.
  로베르토 실바 레나르드 장군 병사들의 기관총과 소총이 불을 뿜고 노동자들의 주검이 온 사방을 뒤덮는다. 내무장관 라파엘 소토마요르는 '가장 신성한 것들'의 이름으로 살육을 정당화한다.
    이 나라에서 가장 신성한 것들은, 중요한 순서로 사유재산, 공공질서, 그리고 생명이다.
_p35, <불의 기억> 3권.

<불의 기억>을 읽다보면 거의 변함없이-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바뀐 채로- 되풀이 되는 역사의 장면들을 종종 발견하곤 한다. '파업'도 그런 장면중에 하나이다. 85호 크레인의 김진숙님을 만나려고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에서 칠레노동자와 함께 살고 함께 죽기위해 이키케 항으로 향하는 수천 명의 노동자와 그들의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이런 되풀이는 반갑다. 희망적이다. 하지만 반갑지 않은 되풀이도 있다. 기관총과 소총까지는 아니지만, 경찰들의 물대포는 작은 사람들을 향해 사정없이 물을 뿜어댄다. 그것도 아주 사람을 죽일 기세로 말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망적인 되풀이가 있다. 바로 예나 지금이나 가장 신성한 것들의 우선순위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때가되어 5.18을 마주하게 되면, 속은 복잡시럽다 못해 그냥 멍해진다.
5.18이 품고 있는 슬픔과 아픔의 무게는 그리고 깊이는 언제나 버겁기만 하다.
그래도 기억하고, 남겨두었다가 우리 아이들에게 전해줘야지 싶어서 옮겨왔다.

원본출처: http://blog.daum.net/kangfull/11 (강풀은 이 만화에 대한 무한펌질을 허용하였다.)


사순절 기도문_스코틀랜드 장로교회 기도문

하늘에 계신 아버지
우리에게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와 같이 되게 하시고
모든 시험을 겪게 하셨으나
죄는 없으셨나이다.
우리의 연약함을 고백하오니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누게 하시어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닮게 하소서
이 사순절 가운데
우리의 생각을 도우셔서
주님의 뜻을 깨닫게 하소서.
우리의 믿음을 도우셔서
주님을 향하여 더욱 깊게 하소서.
그리고 위대하신 주님의 사역을
기도 가운데 보게 하셔서
모든 유혹을 분별하여 물리치게 하소서.
아멘.


사순절의 기도
_이해인

사랑하는 것은 죽는 것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
당신을 위해서 매일 제 십자가를 지는 것
주여 언제나 자기를 방어하고
사소한 일에도 누구에게나 지려고 하지 않는
승자의 오만 위에 곤두 서서
살지도 죽지도 못하고 괴로워하는 나에게
죽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
예수여 나에게는 당신의 굳셈보다는 약함이
무한한 약함이 필요합니다.
저주를 당해도 비난치 않고
넘어뜨림을 당해도 항거치 않고
죽임을 당해도 원망치 않는
사랑에 찬 약함이
이웃에게 지지 않겠다고 발버둥치고
늘 머리를 쳐드는 나의 오만을
당신의 약함으로 부끄럽게 해 주십시오.


지난 17일, 풀무 일요집회에서 홍순명선생님께서 나눠주신 글 두 편을 옮겨왔다.
두 기도문을 읽어내려가자니 구구절절 가슴에 와닿는다. 아니 아주 콕콕 찌른다.

얼마전부터 몸과 마음이 여러모로 힘에 겨운 상황을 지내고 있다.
(이제와 보니 우연인지 필연인지, 사순절기간과 얼추 맞아떨어지는 듯도 하다.)
처음에는 그 상황을 힘들어하고, 불평하고, 해결책을 찾으려고 고민하다 잠못이루는 날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그만 받아들이라는, 더 약해지라는, 예수님을 닮아가라는 메세지가 안팎에서, 사방에서 들려온다.

곧 있으면 부활절이다.
예수님께서 내 삶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리고 실재적으로 부활하시길 기도하고 기대한다.
조금 전 농민교양국어시간에 장기려박사님의 편지를 동무들과 함께 읽었다. 장박사님의 편지는 홍샘이, 김봉숙사모님의 편지는 경례누나가 읽어주었다. 마음이 절절하여 눈물이 났다.

북녘의 아내에게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당신인듯 하여 잠을 깨었소. 그럴리가 없건만 혹시하는 마음에 달려가 문을 열어봤으나 그저 캄캄한 어두움뿐…. 허탈한 마음을 주체못해 불을 밝히고 이 편지를 씁니다.

   여보, 40 년이 흘러 여든이 된 지금 “여보”라는 호칭이 어색하게 느껴집니다. 그렇다고 당시는 쓰지않던 “택용이 어머니”라고 부른다는것도 이상하고…  어쨌든 여보, 어느덧 40 년이 흘렀소. 6.25 참화로 생이별한 이가 어찌 나뿐이오만 해마다 6월이 되면 뭉클 가슴깊은 곳에서 치미는 이산의 설움을 감당못하고 기도로 눈물을 삭이곤합니다.  택용, 신용, 성용, 인용, 진용, 북에 두고온 다섯애들이 모두 살아있다는 얘기는 어찌어찌 흘러전해진 소식으로 들었소.

   50년 12월 3일 후퇴하는 국군을 따라 평양을 떠날때 둘째 가용이만 데리고 월남한 것이 지금 내 가슴속의 못이 되었다오.  그것이 벌써 40년전. 당신과 내가 나이 여든이 되도록 북과 남에 헤어져 애틋한 그리움만 간직한채 살게되는 시작이었음을 어찌 알았겠소.

   의사란 직분때문에 국군야전병원 엠블런스를 얻어타고 평양을 빠져나올때 거리의 아수라장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그날 아침 끊어진 대동강 철교를  이용못해 임시부교를 건너서나마 좀더 남쪽에 가있겠다고 당신과 다섯아이가 신양리 집을 나선뒤 나는 교회에 가 맹렬히 기도를 했더랬소. 오후 4시경 국군 야전병원일을 해준 관계로 친해진 안소령이 앰블런스를 대고 타라했을때 나는 한두어달후면 다시 평양으로 돌아올 것이란 생각으로 차에 올랐답니다. 그때 신양리집에는 부모님들도 계셨지만 “중공군이 내려오면 젊은이들은 모두 죽인다니 너만 타고 떠나거라 우리는 집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셔 부모님도 남겨둔째였지요. 그일도 한으로 남았습니다.

   피난민들로 북적이는 평양종로 거리를 엠블런스가 달릴때 가용이가 하염없이 창밖을 보다 문득 “아버지, 저기 신용이…”하고 외친 소리를 들었지만 나는 차를 세워달라는 말을 끝내 하지못했소.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환자 차에 얻어타기도 했으려니와 차를 세운다면 피난민들이 몰려와 너도나도 태워달라고 간청할 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날부터 며칠간 당신과 아이들은 걸어서 남하하다가 중공군이 앞질러가는 바람에 울며 평양으로 되돌아갔다는 얘기를 나중에 목격자들한테 들었습니다. 다 내 불찰입니다. 그날 아침 당신과 얘들을 먼저 대동강변에 보내지않았다면… 또 종로거리에서 차를 세우기만 했었다면…

   당신도 기억하지요 50년 9월 16일 그 엄청난 평양공습. 그때의 폭탄은 물체에 부딧치면 곧 터져 수천수만의 파편을 좌우로 흘뿌려 평양거리와 시민을 초토화시킨 무서운 것이었지요. 그때 나는 평양의대병원 2층 수술실에 있었는데  3층지붕에 폭탄이 떨어져 불지옥이 되고 그런 와중에도 수술은 계속했던 일이 생각납니다.

   밤새 파편에 맞은 환자들이 쏟아져들어오고 나는 일곱 수술실을 번갈아돌며 모두 49명의 환자를 수술해주고… 그러다 새벽녘 병원앞뜰을 내려다보니 미처 병원에 못들어온 부상자 수백명이 누워 신음하고 있는게 아니겠소. 그때의 울분. 누가 이 사람들을 다치고 죽게 했소. 사상도 이념도 모르고 한 생을 살아왔을 이 민족에게 폭탄을 퍼부은자가 누구란 말이오. 전쟁의 책임을 또 역사의 심판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것입니까.

   45년 쏘련군이 진주하고도 5년간을 당신과 나 우리가족은 평양에 살았지요. 공산주의자들이 나의 신앙을 박해하고 어떻게든 유물사관을 심어주겠다고 별렀지만 실패한것을 당신도 똑똑히 기억하겠지요. 당시 내가 김일성대학 의대교수로 있었고 또 김일성 맹장수술도 해주었다는 허황된 소문도 나돌았지만 나는 절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었소. 김일성대학 부총장 박일 부속병원장  최필석등이 “1년 후면 장선생을 꼭 공산주의자로 만들어드리리다”고 장담했지만 그 결과는 무었이었습니까. 수술에 앞서 기도하고 주일이면 교회에 가는 나를 공산주의자로 만들지 못했지요. 오히려 그들이 무자비한 김일성에 의해 숙청되지 않했던가요.

   50년 6월 25일의 민족전쟁은 김일성이 쏘련 진주 군사령관 스티코프의 시사에 의해 도발한 것입니다. 자본주의 국가와는 공존할 수 없고 어떻게든 타도 괴멸해 공산사회를 세워야한다는 김일성의 신조가 민족의 피를 부른 것입니다. 노동신문은 “남조선 군대가 북침하므로 남에 대한 반격이 불가피하게 시행되었으며 성공적으로 진행중”이라고 보도했으나 그날 나는 박헌영이 방송을 통해 “남조선 군대가 먼저 쳐들어왔다”고 말하며 심하게 더듬는 것을 듣고 공산주의자에게도 일말의 양심은 작용하고 있구나…하고 생각한 기억이 납니다.

   여보, 평화통일에의 꿈은 40년전 전쟁이 일어났을 때나 지금이나 북과 남의 우리 민족 모두의 염원일 것이요. 특히 북녘에 처자 부모를 두고와 불효자 불민한 남편 그리고 제도리를 못한 아버지로 스스로를 자책하는 나에게는 민족사랑에 의한  평화통일을 보는 것만이 여생의 마지막 소망이기도 하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분단되었던 나라들이 속속 통일을 하고 있습니다. 독일이 그렇고 예멘이 그렇습니다. 그들은 지도자와 민족의 슬기로 피흘리지 않고 통일을 쟁취했습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무력에 의한 통일은 반대합니다. 당신과 가족이 보고 싶다고 다시 수천수만의 피를 흘리는 대가로 우리가 재회한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배트남은 전쟁을 통해 통일을 얻었지만 남은 것은 가난과  폐허뿐이 아닙니까.

   여보, 나는 정치는 모르오. 또 얘기하고 싶지도 않고. 그러나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위해 헤게모니를 잡기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정치가, 자기욕심에만 빠지고 공평을 실현하지 못한 정치가들 때문에 동족상잔과 가족이산의 비극이 빚어진 것을 철저히 느낍니다. 평화통일은 민족성원 모두가 공생애를 산다고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요즈음의 국제정세가 화평의 분위기를 타고 한반도에도 긴장완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지만 사랑과 평화 믿음이 없이는 진정한 평화통일은 힘들 것입니다.

   택용 어머니, 나는 요즈음도 이따금 당신과 아이들의 꿈을 꿉니다. 50년 월남후 부산에 내려와 세운 무료병원 복음병원앞에 당신과 내가 서있는데 갑자기 파도가 밀려와 당신을 삼켜가는 꿈도 꾸었습니다. 놀라 일어나보면 텅 빈 방에 혼자 누워있는 나를 발견하고…당신에 대한 나의 깊은 사랑을 다시 느낍니다. 당신이 나에게 가르쳐준 노래를 나직이 불러봅니다.

   단풍잎은 떨어져서 뜰앞을 쓸고나간다
   누른 국화향내는 바람을 떠나 살더니
   처량한 가을이여…
   붉은물 풀어놓은것 같이
   찬란하다 낙조.
   
   내가 지금 인생의 낙조에 들어섰으니 이제와서 부르라고 당신이 가르쳐준 것이었을까요.

   40년을 남한에 살며 재혼하라는 권유도 많이 들었다오. 그러나 당신에게 한 나 스스로의 언약. “우리 사랑은 영원하다. 만일 우리 둘 중 누가 하나라도 세상을 떠나게 된다면 이 사랑은 없어지는 것인가, 아니다. 이 사랑은 우리가 육으로 있을 때 뿐아니라 떠나있을 때에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생명의 사랑이다”고 한 말을 상기하며 당신를 기다렸소.

   여보. 몇년전 남북한의 이산가족들이 몇명씩 남과 북을 방문하여 해후의 기쁨을 나누고 돌아온 것을 기억하지요. 난들 왜 가보고 싶지 않았겠소. 당신과 자식들을 만나고 지금은 돌아가셨을 부모님 산소도 들러보고 용천 입암리 고향집과 평양 신양리의 옛집… 그러나 1천만 이산가족 모두의 아픔이 나만 못지 않을텐데 어찌 나만 가족재회의 기쁨을 맛보겠다고 북행을 신청할 수 있었겠소.

   나는 내 생전 평화통일이 될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온 민족이 함께 어울려 재회의 기쁨을 나누는 그날 다시 만나리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당신도 아는 함석헌 선생이 돌아가시기전 이런말을 했습니다. “나는 이제 육으로는 안될것같아. 영생을 사는 영으로 북녘땅을 밟아봐야지…” 함선생은 벌써 북녘땅을 가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과 사랑으로 평화통일이 이루어질것이란 확신을 가졌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북에서는 종교가 누구에게나 용인되지 않겠지만 당신은 항상 기도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생전에 38선이 열리고 이산가족 모두가 만나 재상봉의 감격을 나눌 수 있다고 믿기에 기쁜 마음으로 이 편지를 끝낼 수 있습니다.

1990년6월 24일, 이산 40년만에 부산에서 당신의 기려.

   기도 속에서 언제나 당신을 만나고 있습니다. 부모님과 아이들이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저는 마음속의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그때마다 당신은 이렇게 하면 어떠냐고 응답해 주셨고, 저는 그대로 따랐습니다. 잘 자란 우리 아이들, 몸은 헤어져 있었지만 저 혼자서 키운 것이 아닙니다. 꿈속의 당신이 무의촌에 갔다오면서 주머니 속에서 쌀 봉투를 꺼내 주시면 저는 하루 종일 기뻤습니다. 당신이 거기에서도 당신답게 사신다는 것을 혜원의 편지를 받기 전부터 저는 알았습니다. 이산가족들과의 만남이 하루 빨리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팔십이 넘도록 살아 있음이 어쩐지 우리가 만나게 될 약속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 언제나 도라 오려나
썩은 나뭇가지에서 꽃이 필 때에 오려나
일구원심 나의 맘에 그대 마음 간절하다
사랑하는 나의 친구 언제나 도라 오려나

암만 말하여도 안타깝기만 하여 이만하고 당신과 기용이네 가족이 건강하여 만나게 될 그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겠으며 부디 옥체 건강하시기를 바라고 또 바라옵니다.

평양에서 김봉숙

   김봉숙 사모님의 편지에서 "당신이 거기에서도 당신답게 사신다는 것을 혜원의 편지를 받기 전부터 저는 알았습니다."부분이 마음에 들어와 여러번 새겨 읽었다. 그리고 장기려 박사님의 편지중에서 "이북에서는 종교가 누구에게나 용인되지 않겠지만 당신은 항상 기도할 것으로 믿습니다. 우리 생전에 38선이 열리고 이산가족 모두가 만나 재상봉의 감격을 나눌 수 있다고 믿기에 기쁜 마음으로 이 편지를 끝낼 수 있습니다."를 찾아냈다. (살아온 날이 40년이 채 안된 나로서는 차마 언급할 수조차 없을 만큼의) 긴 시간과 막힌 공간을 사이에 두고도 두 분은 서로에 대한 진한 믿음을 어떻게 이어오셨을까? 두 분에게 있어서 '믿음'이란 말은 '사랑'이란 말과 다름 없어 보인다. 요즘들어 아내와 종종 사소한 것들로 인해 말다툼을 하는 중에, 그 사소한 것들의 밑바닥을 살펴보면 서로에 대한 믿음의 문제와 이어져있음을 어렴풋이 느끼곤 한다. 이 편지들을 두고 두고 읽으면서 믿음과 사랑에 대해 되새겨 보아야겠다.

"자신의 위상을 확고히 하기위해 헤게모니를 잡기위해 전쟁을 일으키는 정치가, 자기욕심에만 빠지고 공평을 실현하지 못한 정치가들 때문에 동족상잔과 가족이산의 비극이 빚어진 것을 철저히 느낍니다. 평화통일은 민족성원 모두가 공생애를 산다고 할 때에만 가능합니다."  요즘같은 세상이 그런 세상이니만큼, 장기려박사님의 이 말씀이 요즘들어 특히 더 절절하게 다가온다.



2009년 3월 예수원 대도록 열기



예수원 대도록 바로가기 ▶▶

☆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생명평화의 길을 묻다' 즉문즉설 20081120, 기사보기▶
효과나 성공 여부를 생각하면 아무 일도 시작할 수 없다. 녹색운동, 생명, 생태주의 운동은 성공을 기약하지 못한다. 그러나 주저앉을 수도 없다. 성공이나 효과보다 그 길을 걸어간 사람의 발자취가 중요한 것이다. 내 아들, 아들의 아들에게도 ‘아버지의 뜻대로 됐느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아버지가 일생동안 잡념 없이 어떤 길을 걸어갔다’는 게 그 아이들의 정신적인 자산이 된다.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성실하게, 효과는 생각하지 않고 그냥 하는 게 좋다.

+ 여름이가 내 나이쯤 되었을 때,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있을까? 또 여름이는 어디를 바라보며 걷고 있을까?


생활중에 예수원 대도록을 혼자든, 함께든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마련했으면 좋겠다.

시대상황을 살피면서 지속적으로 기도하는 예수원이 있어서 참 감사하다.

예수원 대도록 9월 ▶▶

  1. 허니즈맘 2008.09.16 14:01 신고

    덕분에 그렇게 화평케하는 기도문을 알게 되어서 하나님의 땅을 선물 받은 감동이 있었어요. 결혼한 후, 그렇게 세상으로 열려있고 겸허한 기도문은 접하기 쉽지 않았어요. 물론 내 가까이 있었어도 그것을 찾아 읽고 기도할 기력도 시간도 없었겠지만 말이에요.^^
    이 가을 새롭게 시작하고 회복해야 할 것들이 하나둘 드러나니, 여전히 분주하더라도 어떻게 분주한지는 조금 달라지겠지요. 그것을 기대하며 가을을 엽니다. ^^ 여름이네 샬롬

  2. Joshua 2008.09.19 19:45 신고

    아내랑 시간을 따로 떼어서 기도하려고 마음은 먹었는데, 저희도 쉽지가 않네요.
    치열하고 여유롭게, 허니즈맘도 샬롬~

  3. kangjoseph 2008.09.28 23:21 신고

    언제나 문철형한테 좋은 것들을 많이 알게되네요. 이렇게 필요한 중보기도를 알게 되다니. 고마워요~

    • Joshua 2008.10.13 19:42 신고

      작년 이른 겨울에 예수원 갔을 때 대도시간이 참 좋아서, 그 기도문을 어디서 구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만하다가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근래에 홈페이지에 가보면 된다고 누가 알려줘서 나도 알게 됬어. 10월이 됬으니 10월 대도록도 함 찾아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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