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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정동 외국인묘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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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쿠하쿠의 사진기를 나만의 각도 - 앙각으로 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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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하게 사진찍는 하쿠

狂각의 <a class="key1" onclick="openKeyword('/keylog/%ED%95%98%EC%BF%A0')">하쿠</a>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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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家丁적인 하쿠를 몸소 검증해 줄 여인이 하루빨리 생겼으면 좋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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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은양+유치한군 at 합정동 외국인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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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전 처음 배깍아보는 유치한군과 껍질갖고 장난치는 혁경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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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신랑 유치한군의 생애 첫 배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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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 혁경, 역시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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왠만해선 건지기 힘든 멋진.혁경군.사진 :p
내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하며_2005.01.27_형근형의 기록
이제 내 나이 서른...
고민이 많았던 스물 아홉을 보내고
올년초에 잠시 하프타임을 가졌다.

사실 사표를 쓰려고 했었다.
막상 삼십을 앞두고 내 삶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나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했으나
다른 이들에 의해 가늠된 나의 삶은 초라한 것이였다.
안정되지 못했고.. 그냥 좋은 일 하는구나.. 할것이 없었나보지..
내 삶도 제대로 추스리지 못한채 이상을 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문이 들었었다.
나 자신을 못 돌보고 내 가정도 못 돌본다면
이상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가정도 하나님이 주신 사역지다.
가정을 던진 이상주의자의 삶은 결코 아름답지 않다.
하지만 마음 속에서 청소년에 대한 내가 알지모르는 열정을
져버릴 수 없었다.
그렇다면 안정된 보수보다 꿈이라도 제대로 펼칠 수 있는 곳이었으면 했다.
그래서 대안교육과 청소년복지를 좀더 체계적으로 실천할 수 있고
내가 성장할 수 있는 곳으로의 이직도 고려하게 되었다.
지금껏 하나로에서 미래를 위한 준비보다 당장의 잡일에 매여 허겁지겁 지내왔다. 그동안 나름대로 대학원공부도 시작했고 대안교육관련 세미나와 포럼도 쫓아다니고 자료도 모았지만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좀더 주도적으로 살지 못했다.
---------사표를 보류하고 얻은 2주간의 하프타임---------
내게 있어 이 문제는 절실했다. 하나님의 응답이 필요했다.
휴가기간 중에 좀처럼 뽑지않는 서울시대안교육 현장 두세곳에서
마침 길잡이 교사를 채용하는 광고도 접하면서 하나님께서 이쪽으로 길을 인도하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스스로 절대 안가던 기도원에도 혼자 들어가 보기도 하고
대전 누나집에서 며칠 쉬기도 하고 강원도 태백 예수원으로 떠나기도 했다.
이제 아는 사람을 한명도 만날 수 없었던 포항 학교에 내려가 기도실에서 간절히 기도를 하기도 했다.
포항에 사는 친구의 집에서 정성껏 직접 만든 따뜻한 식사와 잊지못할 부침개도 대접받기도 하고 방학을 이용해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경산 동생의 자취방에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어디론가 떠날 수 있다는 것.... 훌쩍~~ 성령님께서 인도해 주시길 바라며...
휴가중 대여섯권 정도의 책들을 볼 수 있었고 예배와 말씀도 접할 수 있었다.
무엇을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실려고 하시는지 집중하였다.

먼저 내 마음 귀퉁이에 나도 몰래 감추어져 있던
욕심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나선 이 아이들이 어떤 존재인지...
내가 하는 이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려 주셨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인냥 행한 것들에 대해서도 깨닫게 되었다.

새벽 안개와 같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인생...
언제 죽을지 모르는 나의 무기력함과 무능
다시 말씀과 기도로 돌아가야 한다. 이제 다시...

내 삶에 대해 회복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주셨고
내 삶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게 해 주셨다.

비록 세상적인 눈으로 보면 보잘 것 없고 가난한 아이들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이 아이들 속에서 큰 일을 행하고 계심을 인정해야 했다.
비록 내가 눈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쉬지않고 계속 일하고 계심을 인정해야 했다.
지금껏 하나님께서 가장 낮은 자들을 취해 스스로 높아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셨으며
그 선택한 자들을 통해 역사의 지평을 바꾸어 오셨음을 인정해야 했다.

이제 다시 시작하는 인생의 후반전....
스트라이커로 골 넣는 것을 누구보다 좋아하고 즐겼던 나였지만,
이제 주인공이 되기보다 하나님의 뛰어난 조연으로 남고 싶다.
나에게 맡겨 주신 시간... 나에게 맡겨 주신 삶....
나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 나에게 맡겨 주신 돈....
나는 청기기일뿐 .............................................
더 치열하게 살려고 노력해 나갈 것이다.
이 분야에서 전문가로 자리매김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하나님!

연봉과 학력과 명성으로 주어지는 세상의 평가에 연연해하지않고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소명을 더 귀하게 여길 수 있도록 해주소서.

언제든지 다시 넘어지고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나약한 저임을
당신께서 가장 잘 아십니다.
당신께는 실패가 없으며 실수가 없으십니다.
이제 제가 또 넘어지게 되더라도
다시 일어나 무릎 꿇을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결코 저를 포기하지 마소서.

주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아멘


형! 2005년에는 웃는 일이 많아질꺼에요. 봄날은 옵니다.
생일축하해요 그리고 존경해요.

기록일_2005.03.24
  1. ^^ 2005.04.02 20:18 신고

    우와~ 하나로 군포시 청소년 쉼터~^^ 안양가는길에 보이는데네용~ 예전에 졸업후에 이곳에서 일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보고 자원봉사 해볼까 생각도해봤는데... 생각만~~헤헤

  2. 문철군 2005.04.09 15:28 신고

    좋은 곳이에요. 좋은 선생님이 있고, 좋은 학생들이 있는 곳이니^^ 나중에 기회되면 한번 가보시죠~

첫 마음

새해 첫날
이른 아침 세수를 하면서 먹은 첫마음으로
일년을 살아간다면

학교에 입학을 하고 빳빳한 새 책장을 넘기며
일과표 짜던 영롱한 첫마음으로
공부를 한다면

하얀 병실에 누워 입원해있다가
퇴원하던 날의 감사한 마음으로
자신의 몸을 돌본다면

사랑하는 연인 처음 만날 때
콩당거리던 가슴의 불길
꺼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언제나 높이와 깊이
넓이와 크기의 각 그릇을
씻고 닦는 항상 첫마음을 잃지 않으리.


어제 먹은 첫마음 + 오늘 먹은 새마음 = 여전히 첫마음 ^<>< 거물.



덧 글-----------------
내 삶. 내 주변의 것들에 대한 나의 첫마음이 뭐였드라...
선뜻 대답을 못하고 오래 생각 하고 있는 것을 보니,
지켜낸 첫마음도, 우려낸 새마음도 없이 그렇게 살았나보다.

사람이 참 많이 변했다. 열정도 식었고, 심성도 차가와졌고, 감각도 멍청해졌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한 지난 일년은 그 변화의 정도가 유난히 가파랐던 것 같다. 마치 다른 사람이 되버린 듯한 기분. 그런 자신을 그대로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잘 다니던 회사를 내려놓았고, 본연의 나를 되찾는 것을 일순위로 삼아 요즘 하루하루 지내고 있다.

예전의 첫마음들을 조용히 돌이켜보자.
그리고 거기에 새마음을 더해보자.

소원대로, 사람답게 함 살아보자.

_2004.11.27



군대이야기_짧고도 굵은 2년 2개월; 군인 문철군의 잡다한 기록 중에서.

나의 할머니 정현숙(1906~2002);

나의 할머니는 매우 오래 사셨다. 거의 한 세기를 가까이 사시면서 일제시대와 육이오. 유신시절을 모두 겪으셨으니 그 어느 때보다 험난했던 격변의 한국 근대사를 빠짐없이 지나오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가장 큰 낙이자 일거리는 말씀읽기와 찬송부르기 그리고 기도하시는 것이었다. 그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할머니는 그렇게 누구보다도 조용히 일평생을 살아 오셨지만 아내의 자리에서, 그리고 어머니와 할머니의 자리에서 기도와 삶으로 뿌려놓으신 씨앗들은 돌아가신 지금에도 여전히 그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오늘의 나를 돌아보면 할머니께 감사하지 않을수 없다.

기도하는 어머니와 할머니.나는 분명 축복받은 사람이다.

- 할머니의 음성

2002. 07. 22 기록


여기는 문철군이 오래오래 두고두고 새겨야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모아두는 곳이다. 혹, 그 이야기가 나 아닌 누군가에게 뜻밖의 선물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그건 차순위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곳은 매우 이기적인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사람은 이런사람입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손윗사람이건 손아랫사람이건, 가까운 사람이건 아니건 간에 누구에 대해 이야기해도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을 남기다 보면 어쩔수없이 '이 사람은 이러이런사람'이라고 이야기 하게 된다. 시간이 흘러서 나이를 더 먹고 나면, 누군가에 대해 자신있게 이야기 할 수 있을까? 과연 그럴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누군가를 안다 하는 것조차도 버거운 것이 사실인데...하지만 이렇게 조금씩 쌓아가다 보면, 훗날에는 그만큼의(물론 정비례하진 안겠지만) 넓이와 깊이를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매우 주관적이지만 솔직한 자세로, 지나가는 어느 한 순간에 붙잡은 사람들의 기록을 조심스럽게 남긴다.


사람을 알고 싶고, 사람이 되고 싶다. 일생의 소원이다;


사람들, 여기는...
언제 제대 했더라... 하여튼 이제는 민간인. 홈에 '생갈치 1호의 행방불명' 주제곡이 걸려있다. 일본어에 재미붙였나보다. (이 친구의 기록을 살펴보다 중대한 실수를 깨달았다. 각 해당 글과 사진에 날짜를 안남긴 것이다. 앞으로는 남기도록 하자)

작년 삼월에 병특을 마치고 동원훈련까지 다녀온 찬이는 이제 선임연구원이란다. _2003

유찬이가 親久친구에 관한 글을 썼는데, 내 이야기가 나온다. 그래서 친구라는거, 나도 동감한다. _2004.08.24
하쿠, 김학민;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에는 무엇이 있을까? 이 친구와의 관계에서 살펴보자면 그것은 아마도 '서로에게 솔직함', 그리고 '서로를 있는그대로 받아들임'이 아닐까한다. 이렇게 되면 친구가 되기 위한 조건은 없는 셈이다. 단지 친구로 지내기 위한 조건이 있을뿐.

하쿠(아마도 내가 붙여준 별명이지 싶다)의 MBTI는 ISTJ다. 나와는 정반대, 다시말해서 나의 언행을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성격. 가깝게 지내는 인욱이와 성철이의 MBTI도 ISTJ다. 모두다 대학1년에 만났는데, 여지껏 잘 지내는게 가끔은 신기할 정도다. 이 친구들 덕분에 성격(MBTI)은 단지 한 사람의 성격일뿐, 관계를 가늠하는 어떠한 조건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실 성격(MBTI)이 다르면 상대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솔직함'과 '받아들임'이라는 그 이상의 노력이 있다면 친구가 되는 것에서 성격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쿠가 우리의 관계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난 늘 고마움을 느낀다.

학민이의 이상형
하쿠의 솔직함을 잘 보여주는 에세이. 난 이런 하쿠의 솔직함이 좋다. 에세이를 읽어보면 하쿠의 이상형은 꽤 구체적이다. 그렇다고 딱딱한 조건을 일일이 열거해 놓은 것도 아닌 것 같다. 사람을 따지는 조건이라기보다는 행복한 순간을 위한 Wish List에 가깝다.^^ 물론 몇가지 조건이 있긴 하지만 그것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극복하지 못할 하쿠도 아니다. 하쿠는 이상형이라구 해서 썼지만, 내가 보기에 이 에세이는 하쿠를 사귀기 위해 필요한 최상의 매뉴얼이 될 것 같다.

하쿠네 집
베이스를 치는 학민군
음악선곡이 남다르다. 종종 음악들으러, 이야기들으러 놀러간다.

언젠가 같이 부를 노래
김광석씨가 불렀던 + 베이스가 멋진 노래 '자유롭게'
; 학민아, 언젠가 같이 불렀으면 해_2003.10.11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그것도 아주 값진 이야기들로 말이다.
"정말이냐?" 라고 물어오면,
나의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사람이잖아."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는 사람이다.
더불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결국은,
결국은 사람이다.

. 사람이야기
. 나의 할머니 정현숙
. Upriser Nathaniel 유찬
. 잔디, 김희정
. 하쿠, 김학민
. 선생, 김형근
. 현실과 이상 사이를 가로지르는 화살, 손성실
이사를 하면서
전에 계셨던 선생님이 책상 유리 사이에
넣어 두셨던 글을 챙기게 되었습니다.
도종환시인의 글인데요.
좋아서 보관하려고 넣어두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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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며는

-도종환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면는
이 땅의 가장 순박한 아이들 곁으로 갑시다.
나룻배 타고 강 건너며
강물 위에 반짝이는 아침 햇살 만지며 오는 아이
등교길에 들꽃 여러 송이 꺽어와 교탁에 꽃는 아이
논둑밭둑 땀으로 적시고 풀잎냄새 풍기며 일하는 아이
과일냄새 흙냄새가 단내로 몸에 배어 달려 오는
그런 아이들 곁으로 갑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며는
파도를 가르며 이땅의 가장 궁벽진 섬으로 갑시다.
어젯밤 갱도에 아버지를 묻고 검은 눈물자국
아직 지워지지 않은 아이들 곁
지게마다 가득가득 빈곤을 지고 한평생을 땅을 파다
얼굴빛 흙빛이 된 아버지 둔 아이들 곁으로 갑시다.
그들이 삼킨 눈물
그들이 귀에 못박히도록 들은 신음소리 곁으로 갑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이 되며는
거짓이 없는 학교로 갑시다.
아이들의 초롱한 눈 속이지 않는 학교로 갑시다.
올곧은 말씀 진실한 언어로 가득 찬 교과서 들고
교실문 들어설 수 있는 학교로 갑시다.
끝종소리 들으며 진리를 바르게 가르친 보람으로
가슴 뿌듯해 오는 그런 학교로 갑시다.
가서 티끝만한 거짓도 걷어내는 선생님이 됩시다.

우리가 나중에 선생님이 되며는
휴전선 철조망 바로 아래에 있는 학교까지 갑시다.
바람부는 중강진, 개마고원 그 곳까지 갑시다.
가서 우리가 새로이 하나되기 위해 몸 던지는 선생님이 됩시다.
어떻게 이 나라 이 민족 역사가 그릇되었으며
어떻게 진정으로 하나 되는 젊음이가 되어야 하는지 가르치다
청정하던 젊은 백발이 될 때까지 가르치다 스러져
그곳에 뼈를 묻는 선생님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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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철군 2002/12/02
비록 지금 제가 서 있는 길과는 좀 떨어진 다른 길에서 온 울림일지는 모르겠지만, 읽고 있으려니 마음 속에 뭉클한 떨림이 옵니다. 힘이 됩니다. 저도 제 길에서 꿈을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을 살아갈 힘이 되는 꿈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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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글은 한동대학교를 졸업하고 청소년쉼터에서 '선생님되기'를 시작한 형근형이
잡다한 기록 in Paper Board에 연재해 주신 글입니다.
2005.10.18 Board▷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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