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일요집회 본강에서 나눈 이야기와 이후에 들었던 생각들을 간략하게나마 여기에 적어둡니다.


1. 시편을 통해 하나님의 언어;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본회퍼의 『시편 이해』의 일부를 함께 읽었다. 본회퍼는 루터의 말을 인용하며 시편을 통해 기도하는 법을 배울 수 있다고, 배워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사랑하는 우리 주님은 시편과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가르치시고 기도의 영을 부어 주시어, 우리가 진지한 믿음과 기쁨으로 끊임없이 바르게 기도할 수 있도록 은혜를 주셨다. 왜냐하면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님은 이 기도를 명령하셨고 우리가 이것을 소유하기 원하신다."_루터

"어린아이는 아버지가 건네는 말을 통해 말하는 법을 배웁니다. 즉, 아버지의 언어를 배우는 것입니다. ... 우리의 기도는 하나님의 언어를 따라 말하면서 시작됩니다." _디트리히 본회퍼


2. 아침마다, 예배마다 시편을 꾸준히 읽어봅시다. 

매일 아침마다 시편을 읽는 습관, 예배 때마다 꾸준히 시편을 읽는 전통의 유익에 대해 더 말해 무엇하랴. 문제는 실제로 그렇게 안한다는 것일 뿐. 오랫동안 성경을 덮어두고 살았다만, 이번 본강을 계기로 시편만큼은 다시 챙겨 읽으려한다.


3. 시편을 외웁시다.

무교회집회에서 어린이 예배에 대한 별다른 전통이 없다는 것은 큰 약점이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론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유년 시절의 교회 생활을 되돌아보면 유익하고 행복했던 기억과 함께 그 곳에서 알게 모르게 스며든 ‘두려움’과 ‘죄책감’에 오랫동안 시달렸던 기억이 함께 떠오른다. 아이들에게 두려움과 죄책감을 심어주지 않으면서 신앙을 갖게하는 방법을 (알고 싶었다 그러나) 알지 못했다. 그래서 그동안은 무교회집회가 있는 일요일 아침이면 아이들과 한자리에 둘러앉아 성경을 읽어주거나, 옛이야기를 함께 읽는 정도의 습관을 가지는 것이 전부였다. 일부러 "~ 해야한다,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식의 설교는 최대한 배제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어보려고 한다. 바로 시편 외우기. 아이들이 시편암송이라는 최소한의 강요(?)를 통해 두려움과 죄책감에서 비교적 자유로우면서도 신앙을 가질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바란다. 


4. 시편을 유산으로 물려줄 수 있습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 당신의 목소리를 녹음해놓고 싶었다. 할머니에게 좋아하시는 찬송과 말씀 그리고 기도를 부탁드렸다. (할머니의 이야기▶) 그때 읽어주신 말씀이 바로 시편 23편이다. 할머니가 읽어주시는 시편 23편은 그래서 나에게 매우 각별하게 다가온다. "참 좋다. 이거 외던거야~"라는 할머니의 이야기가 그 어떤 설교보다 (심지어 같은 해에 태어난 디트리히 본회퍼의 이야기보다 더) 강력하게 나를 말씀으로 끌어당긴다. 같은 방식으로 혹시 내가 남겨 놓은, 아빠가 암송하던 시편의 어느 구절이 여름이와 여울이에게 각별하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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