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찰과 용기로 깃발을 드는 전태일의 불같은 정신이 있다면 낮은 곳으로부터 스며들어 종국엔 모든 것을 삼킬 수 있는 물의 정신이야 말로 이소선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40년을 꾸준히 한 길을 가는 힘. 40년을 꾸준히 낮게 임하고 높게 꿈꿀 수 있는 실천과 의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생명과 삶을 모든 가치 판단의 중심에 두는 이소선 정신은 환경과 복지, 반핵과 평화 등 미래 가치와 맞닿아 있다. _김근태


이소선 어머님을 회상하는 (故)김근태님의 이야기가 가슴에 와서 콱 박혔다.
그래서 알게 되었다. 내 삶의 지향점이 어디에서 어디로 바뀌었던 것인지를.

나는 원래 불같은 사람이 되기를, 불같은 삶을 살기를 바랬던 것 같다.
아마도 그 갈망의 정점은 대학시절이었던 것 같고.

되짚어보니 이 곳 홍동으로 내려오기 전과 후로 나의 삶의 방식이,
좀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자면 삶의 지향점이 정반대로 바뀌어 버렸다.
나 스스로도 알아채지 못하는 사이에 말이다.

생각해보면,
예수님은 불처럼, 물처럼 사셨던 것 같다.
권정생 선생님은 물처럼 사셨던 것 같고.

그럼 난,
둘 다는 불가하겠고,
다만
물같은 사람으로 살다 갔으면 좋겠다.
정말 그럴 수 있으면 좋겠다.


  1. Joshua 2012.03.19 05:55 신고

    소극적 삶을 옹호함_김소연 시인
    http://news.hankooki.com/lpage/opinion/201203/h2012031521015881920.htm

    소극적인 태도는 물론 절박한 현실 앞에서는 무능하기 십상이다. 그렇지만 누가 일부러 무능을 자처하겠는가. 한 발짝 비껴 서서 남들보다 조금 더 회의하고 남들보다 조금 더 고민할 뿐이다. 소극적 삶도 적극적인 삶과 다른 층위에서의 적극성을 지녔다. 소극적 삶은 책임질 수 있을 만큼만 말하고 말한 만큼을 책임지는 삶이다.

    갑갑한 제도권에 작은 구멍을 내는 일은 짐작보다 어마어마한 용기가 필요하다. 물론 적극적인 사람에 비하면 다소 비관적이어 보일 수는 있다. 그러나 세상은 큰 물줄기를 바꾸는 사람도 필요하고 작은 물줄기를 내는 사람도 필요하다. 작은 물줄기를 내는 사람은 아주 많이 필요하다. 너무나 적극적으로 세상을 바꾸려 했던 신념에 찬 영웅들이 오히려 세상을 망치는 경우를 주목해온 나는 조금 더 비관에 기울고 싶다. 신념보다는 의심을 더 발달시키고 싶다. 정치인들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집중할 시간에, 정의는 도대체 어떤 것인지와 정의감은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지에 대해 복잡하고 세세하게 의심하고 또 의심하고 싶다. 그러다 가느다란 한숨처럼, 내 몫의 소극으로 내 깜냥의 숨통을 구멍처럼 숭숭 내면서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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