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소통하는 법] 이창현 국민대교수(소통학) “사람과 자연에 대한 배려 뒷동네·텃밭에서 배운다” / 대학사회 개인주의·소비풍조 만연 / 착취 말고 소통하는 지식인 키워야 경향 20090718, 기사보기▶
대학생들이 학교 뒷동네의 사람들과 소통한다면 그곳이 바로 ‘사회학개론’ ‘경제학개론’이 담겨있는 통합적 교육장이 될 수 있는 것이다. ... 아스팔트 사이에 있는 작은 텃밭은 학생에게 있어서 자연과의 소통을 위한 ‘환경정책론’ 교실이며 ‘기후변화협동과정’ 이상의 의미를 제공한다. 이렇게 소통을 배운 학생들은 이론을 말하지 않아도 사람을 착취하고 자연을 착취하는 현대사회의 문제를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소통은 사회를 보는 눈을 열리게 하고, 자연과 공존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대학은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의 욕망과 소통하며 바벨탑만을 쌓고 있는 듯하다. 대학 사회내에 만연하는 개인주의와 소비풍조는 대학이 사회와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개인적 소비욕구와 소통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사람과 자연을 착취하는 산업화시대의 지식을 가르쳤던 대학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인류사회의 미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산업화 시대의 회색지식인이 사람·자연과 소통하지 못하는 지식인이었다면, 생명평화시대의 녹색지식인은 사람·자연과 소통하면서 그들을 배려하는 지식인이어야 한다.
_이창현 | 국민대교수

+ 지난주 수목금, 포항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오랜만에 학교에 들러서 산책도 하고, 류대영선생님을 만나 밥도 같이 먹고, 산책하는 길에 이재영교수님도 만나 잠깐 이야기도 나누고, 서점아저씨네서 하루 신세도 지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왔다.

한동을 생각하면 글쎄 뭐랄까 마음이 복잡하다. 내가 정말 사랑했던 곳이자 또 그만큼 아쉬움이 큰 곳이기 때문이다. 20대 젊은 날, 내 작은 그릇을 나름대로 키워주고 풍성하게 채워준 곳이기에 이미 지난 시간에 대해서는 후회도 없고, 아쉬움도 적다. 하지만 요즘의 시선으로 한동을 보면 아쉬움이 적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한동대 졸업생이라는 것이 부끄러워지기까지 한다.

내가 그렇게도 좋아하고, 사랑했던 학교를 이제는 너무나 부끄러워하고 아쉬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HANDONG GOD'S UNIVERSITY.'라고 마침표까지 찍어서 대문간에 써붙인 경솔함과 그 뒤에 숨어있는 오만함과 그 뒤를 따라오는 우월감이 첫번째 이유이지 싶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비전을 '선포'하는 것이 그 비전을 향해 나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대학'이라는 말은 그 누구라도, 그 어느 집단이라도 쉽게 사용해서는 안되는 말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드러냈다는 것은 내면에 숨어있는 오만함이 아니고서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

무슨 이상이든, 무슨 비전이든 선포는 해놓고 겸손하게 자신을 성찰하는 작업을 잠시라도 쉬어버리면, 이미 자신들이 그 비전을 이룬 것 같은 착각을 하게 된다. 무리나 집단에서는 더욱 그러기 쉽다. 그러다가 누가 옆에서 '하나님의 대학'이라고 떠받들어주기라도 하면 자아도취는 더 심각해지고 만다. 그렇게 집단적인 마취상태에 빠지고 나면 공동체적인 자기 성찰과 회개는 더 어려워진다. 악순환에 빠지는 것이다.

한동대학교는 특별한 학교이다. 하지만 한동대학교만 특별한 학교라고 생각하는 순간 문제가 시작된다. 더군다나 하나님의 대학이기때문에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문제는 아주 심각해진다. 건강한 자부심을 넘어선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민의식에 다름없는 우월감에 빠진 것이다. 여기 저기서 접하는 학교소식에서, 졸업생들 소식에서 그런 우월감이 스며있는 것이 느껴진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내 자신부터 그런 우월감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접하는 소식들에서 그런 느낌을 받는지도 모르겠다. 곰곰히 생각해보지만 나 역시 한동인으로서 가지는 '자부심'과 '우월감'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때로는 일부러 '한동대출신'이라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하는데, 오해가 부담스러워서이기도 하고, 우월감을 경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럴수록 오히려 그런 마음 한켠에 우월감이 숨어서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자부심이냐, 우월감이냐의 문제가 그렇게 대단한 문제는 아닐수 있겠지만, 평생을 따라다닐 문제라는 생각은 든다. 비단 출신대학에 대한 마음에서 비롯한 문제만이 아니라 개인의 정체성과 여러모로 연결된 것이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론 내 자신이 그런 부분에서 좀 더 담담해졌으면 좋겠다.

내가 가지고 있는 한동에 대한 아쉬움을 구체적으로 드러내는 신문기사를, 묘하게도 이번 여행에서 우연히 들른 한동대 도서관 신문 열람대에서 발견했다. 대학사회내에 만연하는 개인주의·소비풍조를 비판하면서, 대학은 착취 말고 소통하는 지식인을 키워야 한다는 이창현 교수의 글이었다. '대부분의 대학' 대신 '한동대'를 바꿔 넣고 읽으면 딱 내 생각과 다름없었다. '한동대는 사람과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자신만의 욕망과 소통하며 바벨탑만을 쌓고 있는 듯하다. 대학 사회내에 만연하는 개인주의와 소비풍조는 대학이 사회와 자연과 소통하지 않고 개인적 소비욕구와 소통하는 모습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사람과 자연을 착취하는 산업화시대의 지식을 가르쳤던 한동대는 이제 바뀌어야 한다.' 아주 명쾌하다. 하지만 그래서 한없이 우울하다.

학교로 돌아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던 울창했던 산 하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연료전지 공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한동의 대학로라고 불렸던, 그래서 너무나도 사랑스러웠던 칠포로 가는 논길은 신항만을 연결하는 도로가 뚫리면서 허리가 잘렸다. 볼품이 없는 정도가 아니라 괴기스러울 정도다. 학교가 있는 흥해에서 빠져나와도 여전히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둘째 낳기전에 큰 맘먹고 나선 여행인데, 아내나 나나 마음 한켠이 불편하기 그지없다. 보고싶은 사람들 몇몇조차 없다면, 다시는 이곳에 발길 돌릴 일은 없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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